히메지 가는 길
오사카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여 신칸센을 놓치고 보통열차(오사카역)로 히메지로 향하는 중간에 잘못 내리는 바람에(잠결에 밖에 하얀 성이 있는 것을 보고 내렸으나 히메지성이 아니더군요. ^^;;) 히메지에는 약간 늦게 갔습니다.
![]() 자다께서 본 문제의 성 | ![]() 히메지 성의 입구에서 | ![]() 성의 외곽 문 |
히로시마와 미야지마 그리고 쿠라시키까지 모두 돌아보는 바쁜 일정이라서 히메지까지는 거의 달리다시피하며 갔습니다.(히메지 역에서 내리면 도로따라 죽 올라가면 됩니다.) 입구에서 600엔의 거금을 주고서 입장권을 구매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히메지성에 관한 안내 팜플렛을 영문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팜플렛 외에는 영문 설명이 따로 제공이 되지 않으며 쿄토고엔같은 영문 안내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더군요. 그러면 히메지성을 둘러보기 전에 히메지 성의 내력에 대해서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히메지 성의 역사
1333년 노리무라 아카마쓰가 히메지의 절벽 위 전략적 위치에 요새를 건설
1467년 아카마쓰 마사노리가 안뜰 뚜 곳을 조성
158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새에 3층 본채 증축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 후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사위 이케다 데루마사에게 상으로 히메지 성을 하사
1601년 이케다 데루마사가 성채 주변 세 군데에 해자를 파기 시작
1609년 5층 본채 완성
1618년 혼다 다다마사가 서쪽 뜰에 건물 증축
1869년 히메지성 국유가 됨
1912년 히메지시에 히메지 성을 빌려줌
1931년 국보로 지정됨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됨
다음은 한국유네스코(www.unesco.or.kr)에 나와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입니다.1333년 노리무라 아카마쓰가 히메지의 절벽 위 전략적 위치에 요새를 건설
1467년 아카마쓰 마사노리가 안뜰 뚜 곳을 조성
158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새에 3층 본채 증축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 후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사위 이케다 데루마사에게 상으로 히메지 성을 하사
1601년 이케다 데루마사가 성채 주변 세 군데에 해자를 파기 시작
1609년 5층 본채 완성
1618년 혼다 다다마사가 서쪽 뜰에 건물 증축
1869년 히메지성 국유가 됨
1912년 히메지시에 히메지 성을 빌려줌
1931년 국보로 지정됨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됨
⊙ 현존하는 16세기 일본성곽 건축의 가장 뛰어난 모범
⊙ 고도로 발달된 방어시스템과 교묘한 보호장치를 갖춘 83개의 전각이 있음
⊙ 일본 쇼군시대 초기의 봉건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
히메지성 관광 코스

히메지성을 구경하는 코스는 매표소를 시작하여 성문을 거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대망루를 거쳐서 성문으로 나오는 코스가 일반적인 코스입니다. 빨간색 화살표 방향이 이동코스가 됩니다.
코스를 따라가며 본 성의 모습

왼쪽 편의 정사각형 검정색 부분

서쪽 마루방
여기를 구경하시기 전에 먼저 신발을 벋고 주변에 있는 봉지에 신발을 꼭 넣고 이동하세요. 안그러면 혼납니다. ^^;; 서쪽의 긴 마루방(우측사진)은 일명 100간 복도라고도 불리며 우측사진 기준으로 좌측편에는 공격시에 대비하여 낙석 및 기름을 쏟을 수 있는 구멍이 장치되어 있고 우측에는 하급무사들이 사는 방이 있습니다.
서쪽 긴 마루방의 꺾어지는 부분에 달하면 센공주의 거처를 보실 수가 있습니다. 센공주('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센입니다. ^^)의 오른손 방향에 고양이 모형도 있습니다. 영문 설명에는 여기에서 행복한 생활을(Happy Days) 보냈다고 간략하게 나와있지만 히메지 시 소개책자에는 다르게 나와있네요.

센공주의 방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고양이 모형도 ^^
센공주 이야기
센공주는 도쿠가와의 2대 장군, 히데카다의 딸로 이에야스의 손녀이다. 7세에 도요토미 히데요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와 결혼. 히데요시가 죽고난 어느 여름 오사카의 진영에서 남편이 자해한 것이 그녀의 19세 때 였습니다.
불타는 오사카성을 탈출한 센공주는 에도로 향하는 도중 미에현 구와다의 성주 혼다 타다마사의 아들, 타다오키와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져 곧 결혼하였습니다. 1년 후, 아버지 타다마사가 유배되어 둘은 히메지 성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계속되지 않고 장남 사치치요가 3살로 죽고, 이어서 남편도 죽습니다. 그 후 머리를 삭발하고 텐슈엔이라는 호칭으로 에도로 돌아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40년간을 혼자서 지내다가 7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센공주를 거쳐서 조금만 더 지나가면 다시 니시노마루로 나오게 됩니다. 이 때 신발은 벋으시고 봉지는 봉지 넣는 통에 넣으시면 됩니다. 여기를 지나면 하노문, 니노문 등 여러문을 거쳐 대망루에 이르게 됩니다.
![]() 서쪽에서 바라 본 대망루 | ![]() 성 입구에서 바라 본 대망루 | ![]() 혼마루에서 바라 본 대망루 |
이 때 대망루 뒤편에 성벽 일부에 철조망이 쳐져있는 것을 보실 수가 있는데요. 히데요시가 히메지 3층의 망루를 쌓을 때 떡을 파는 가난한 노파가 바칠게 없어서 바친 돌절구를 돌담에서 보실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뭔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던 것이 생각나네요. 대망루 뒤편으로 하여서 한바퀴 돌아와야 대망루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다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 돌절구가 있는 대망루 뒤쪽 | ![]() 망루안의 박물관, 일본도 | ![]() 망루안의 박물관의 갑주 |
![]() 대망루에서 본 전경 | ![]() 복도에 전시되어있는 무기들 | ![]() 복도의 조총 |
대망루는 지상6층, 지하1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5층으로 보인다구 하는군요. 아래쪽의 1,2층에는 히메지 성과 관련된 유물(아래쪽 첫번째 두번째 사진)과 성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3, 4, 5층에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구요. 가파른 계단(오른쪽)을 올라가다보면 갈수록 좁아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모든 층을 보시게 되면 총걸이 및 창걸이(아래쪽 세번째 네번째 사진)가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유사시를 대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층에 도달하게 되면 오사카베 신사(아래쪽 다섯번째 사진) 및 히메지 시가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오사카베진자 | ![]() 망루 안의 가파른 계단 | ![]() 망루 일층의 모습 |
다시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당시 생활 상과 히메지성에 관련된 역사자료관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망루에서 나오면 안쪽 뜰인 혼마루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여기 망루각에 얽혀있는 히메지 성의 이야기가 또 있답니다. (다음의 내용은 '히메지 관광 안내책자'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내용입니다.)

역사자료관에 있는 원래의 히메지 성의 모습
망루각에 얽혀있는 이야기
이케다 데루마사에 의한 히메지 성 축성의 책임자인 사쿠라이 겐베에. 그는 준공후의 어느 날 망루에서 몸을 던져 자해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유인 즉, 정성들인 망루각이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여 부인을 데리고 망루에 오르니 "성이 근사합니다만, 아깝게도 조금 기울어져 있군요..."라고 지적됨에 '여자의 눈에도 알 정도인가...'라고 실망한 간베에는 끌을 물고 뛰어 내렸다고 합니다.
[주인생각: ^^;; 원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임의로 했습니다.]
이케다 데루마사에 의한 히메지 성 축성의 책임자인 사쿠라이 겐베에. 그는 준공후의 어느 날 망루에서 몸을 던져 자해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유인 즉, 정성들인 망루각이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여 부인을 데리고 망루에 오르니 "성이 근사합니다만, 아깝게도 조금 기울어져 있군요..."라고 지적됨에 '여자의 눈에도 알 정도인가...'라고 실망한 간베에는 끌을 물고 뛰어 내렸다고 합니다.
[주인생각: ^^;; 원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임의로 했습니다.]

자살구역
또한 히메지 성은 축성 이후로 한번도 전쟁을 겪지 않았죠. '일본 문화의 이해'라는 강좌에서 자살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이곳을 들었는데 과연 따로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 칼을 씼을 수 있는 수로 | ![]() 자살을 위한 방? | ![]() 그 옆의 우물 |
자살구역에서 다시 나가는 길로 돌아와서 밖으로 나가다보면 오키쿠의 우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오키쿠의 우물에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오키쿠의 우물
사랑을 따라 죽은 여심, 오키쿠
약 5백년 전의 무로마치 시대의 이야기 히메지 성주 고데라 노리쇼쿠의 집권시 아오야마 테츠잔에 의한 가주 탈취 음모를 안 충신 키누가사 모토노부는 테츠잔의 집에 애인인 오키쿠를 여중으로 잠입시켜 노리쇼쿠가 난을 피하게 하였으나 성은 테츠잔의 것이 되었다. 오키쿠는 남아 내정을 탐색하였지만 곧 발각 테츠잔은 가보인 접시 10장 중 1장을 감추었다는 죄를 오키쿠에게 씌워 죽인 후 우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사랑을 따라 죽은 것 같지는 않군요. ㅡㅡ;;; 아마 방대한 러브스토리를 축소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히메지에관한 그 밖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마가 망루각에서 요괴를 퇴치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군요. 약 5백년 전의 무로마치 시대의 이야기 히메지 성주 고데라 노리쇼쿠의 집권시 아오야마 테츠잔에 의한 가주 탈취 음모를 안 충신 키누가사 모토노부는 테츠잔의 집에 애인인 오키쿠를 여중으로 잠입시켜 노리쇼쿠가 난을 피하게 하였으나 성은 테츠잔의 것이 되었다. 오키쿠는 남아 내정을 탐색하였지만 곧 발각 테츠잔은 가보인 접시 10장 중 1장을 감추었다는 죄를 오키쿠에게 씌워 죽인 후 우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제 히메지 성을 다 보았습니다. 성문을 거쳐서 나오다보면 정원의 흔적(안내서에도 따로 이름이 나와있지는

성의 외곽 부분에 있는 공원
제가 갔을 때는 히로시마 기차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1시간 15분만에 날림으로 봐서 히메지 성의 장점들에 대해서 모두 감상할 수는 없었습니다. 천천히 보신다면 성내에서만 두시간 정도 소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히메지 시에는 히메지 성외에도 현립 역사박물관을 비롯 문학관, 시립미술관, 쇼사잔 등 여러 볼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히메지 TIC가 히메지 역 지하에 있으니 들르셔서 먼저 정보를 얻고 이동하시는 것도 나을 것 같습니다.
[주인생각: 지금와서 새삼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히메지 성을 유명한 관광지로 만든 것은 여러 사람의 노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 내부에서 유물 보전을 위해 신발을 벗고 봉지에 넣고 다니게 하는데 여기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원 봉사자들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성에 얽혀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게 마네킹이나 모형 등으로 꾸며놓아서 볼 수있게 하구요. 이러한 노력이 있어서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글이 너무 길지않소.
답글삭제세줄로 요약 바라오